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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부노트/한국사

신라시대 골품제

by 복습쟁이 2018. 1. 25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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골품제

 - 신라가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복, 병합된 각지의 크고 작은 족장 세력을 경주에 이주시키고 

이들을 중앙지배체제 내에 편입시켰다. 이 때 이들 세력의 등급과 서열을 바탕으로 골품제가 성립되었다.



문제1. 신라의 골품 제도와 관련하여 옳지 않은 것은?

① 가옥의 규모와 장식물, 수레 등 신라인의 일상생활까지 규제하는 기준이 되었다.

② 6두품은 득난이라고도 하였는데, 진골 다음 가는 신분이었다.

③ 아찬과 일길찬은 경의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

④ 복색의 기준은 신분에 따라 자색 - 단색 - 비색 - 녹색의 순서로 정하였다



문제2. ㉠과 ㉡ 두 인물의 공통된 신분상의 특징으로 옳은 것은?

㉠은(는)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통하여 조언하였다.

은(는) 진성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다.


① 왕이 될 수 있는 신분이었다

② 관등 승진에서 중위제를 적용받았다.

③ 자색의 공복을 착용하였다

④ 중앙 관부의 최고 책임자를 독점하였다.












문제 1 정답 : ④ 보기에 제시된 내용은 고려시대 관복에 관한 내용이다. 신라시대는 자색 - 비색 - 청색 - 황색


c.f 각국의 관복

백제 

자색,비색,청색 

신라 

자색,비색,청색,황색 

고려 

자색,단색,비색,녹색 

조선 

홍색,청색,녹색 




문제 2 정답 : ②

㉠은 설총이다. 설총은 신문왕에게 '화왕계'를 통해 충신의 충언을 통한 정직한 도리의 숭상을 조언하였다.

㉡은 최치원이다. 최치원은 894년 관직생활에서 목격한 모순 해결을 위해 진성여왕에게 개혁안으로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으나 진골귀족들에 의해 외면당했다.

두 인물 모두 6두품이었다. 6두품은 대아찬 이상의 관등을 가질 수 없어 이를 해소키 위해 중위제도를 통해 아찬 관등에 특진을 위한 중위를 설정하였다.

 * 신라의 중위제 : 신라의 골품제에 의하면 6두품 이하에 속한 사람은 규정 이상의 관등을 받을 수 없다. 이를 해소키 위해 통일 전 후 시기에 그들을 위한 특진제도인 중위제가 제정되었다. 중위가 설정된 관등은 아찬, 내다마, 나마의 관등이었다. 즉, 아찬에는 중아찬에서 4종아찬까지 중위가 설정되었다.


*기타 보기 정오판단 

① 왕이 될 수 있는 신분은 진골

③ 자색의 공복은 대아찬 이상만 가능

④ 중앙 관부의 최고 책임자는 대아찬 이상만 임명되었음(영, 오늘날의 장관쯤 해당됨)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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